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慶州 高仙寺址 三層石塔.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본래 [[경주시]] 암곡동 고선사터에 있던, 전체 높이 9m의 거대한 [[화강암]]제 삼층[[석탑]]으로 [[통일신라시대]] 초기인 7세기 말 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.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이 서있던 암곡동 고선사터는 경주고도 종합개발계획으로 인해 근처에 덕동댐이 건설되어 인공 호수인 덕동호가 만들어지면서 수몰되었으며, 본 석탑은 [[댐]] 건설 전인 1975년에 [[국립경주박물관]]으로 이전됐다. || [[파일:국보38호경주고선사지삼층석탑수몰전.jpg|width=565]] || || 암곡동 고선사터가 수몰되기 전의 고선사지 삼층석탑 || 고선사터에는 본 석탑 이외에도 비신이 없어진 귀부[* =거북이 모양 비석 받침돌]를 비롯해서 일부 유구가 남아 있었는데,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학술 조사로 이 일대의 유구를 발굴하였으며 여러 유물들을 수습할 수 있었다. 기존의 다른 유구들과 발견된 유물들 역시 모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같이 옮겨졌다.[* 출처: [[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523021&cid=46656&categoryId=46656|한국민족문화대백과 -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]]] 고선사의 창건연대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, 고선사는 신라의 [[원효대사]]가 주지스님으로 있었던 절이다. 이는 [[일제강점기]]인 1913년~1914년에 있었던 일본학자들에 의해 실시된 고선사지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원효대사의 행적비인 서당화상비(誓幢和尙碑) 파편에서 확인되었다.[* 이때 발견된 서당화상비 파편은 현재 [[국립중앙박물관]]에 소장되어 있다. 한편 1968년에는 서당화상비의 다른 파편이 엉뚱한(?) 곳에서 발견되었는데, 고선사터에서 약 10km가량 떨어져있는 경주시 동천동에 위치한 동천사(東泉寺)터에서 상단부 파편이 발견됐다. 1968년에 발견된 서당화상비 상단부 파편은 현재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. 출처: [[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1110990&cid=40942&categoryId=33068|두산백과 - 서당화상비]], [[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1110990&cid=40942&categoryId=33068|한국민족문화대백과 - 서당화상비]]] 기록에 따르면 고선사는 고려시대까지도 규모도 크고 번창했던 것으로 보이는데, 알 수 없는 시기에 폐사가 됐으며 폐사에 대한 기록도 현재 딱히 전해지는 것은 없다.[* 출처: [[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523020&cid=46648&categoryId=46648|한국민족문화대백과 - 고선사]], [[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2054796&cid=42840&categoryId=42846|답사여행의 길잡이 2 - 경주 : 고선사터]]]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댐건설로 인해 고선사터가 수몰되기 이전인 1962년에 이미 [[대한민국의 국보|국보]] 제38호로 지정되었으며,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현재는 [[국립경주박물관]]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